▲ 박혜영 전국장애인연대 원주시지부 전 회장

어느 장애인 엄마의 하루

어머니의 입원 절차를 밟고 나서 한숨 돌리며 집으로 향하다가 방금 전 병원에서 119구급대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다른 병원은 의사가 없어서 여기로 이송했어요" 갑자기 연락이 뜸해진 후배 엄마가 궁금해졌다. 요즘같이 병원이 어수선할 때 '혹시나 아이가 또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낯선 분이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에 전화드릴거라고 한다. '아! 역시나 아이가 입원을 했구나' 안부 문자를 남기려는 찰나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아침에 구급차로 입원했단다. 
"아이 상태는 어때"하고 물었더니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단다. 혼자 몸을 가누기 어려운 아이가 엄마만한 몸집으로 자랄 때까지 십수 년을 안아 옮기고, 학교로 치료실로 병원으로 다니면서 몸에 탈이 난 것이다.

하루 종일 주사를 맞아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다면서도 집에 있는 아이 걱정이 먼저였다. 입원 기간 동안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후배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몸조리 잘하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돌봄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을 터이니 주 양육자인 후배 엄마의 입원과 치료는 앞으로도 여러 번 반복될 것이고 그때마다 마음고생도 심해질 생각에 그저 치료 잘 받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작년 겨울 큰아이의 공교육과정 졸업식 날이었다. 고등학교 이후 특수학교의 전공과까지 총 14년 학교생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마음에 들지 않는 꽃다발을 보면서 마지막 졸업식 사진에 남을 꽃다발에 돈을 아낀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것 같은 장애인의 성인 되기, 졸업과 동시에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쫓겨난 듯한 불안함, 발달장애인이 환대받을 만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이방인이 된 듯한 막막함 때문에 학업을 마치는 아이의 노력과 선생님들의 노고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었다.

졸업 후 어느 날 우연히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이를 알아보는 편의점 직원을 만났었다. 직원이 나를 보며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고1 담임선생님과 통합교육지원실 특수교사와 상담하면서 친구들이 장애가 있는 친구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궁금했었는데, 아이를 알아봐주는 친구를 보며 불현듯 내 아이에게 고맙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너도 친구처럼 열심히 일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맛있는 것 사드리자"며 엄마의 바람을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이후 아이는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날은 친구에게 꾸벅 머리를 숙이고, 어떤 날에는 "안녕"하고 인사했다. 아이에게는 소중한 동창이 아직도 근무하는지 가봐야겠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아이와  욕실용품을 사러가서 물건을 고르느라, 옆에 있던 아이가 다른 손님을 뚫어져라 바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때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불편하지 않겠냐"는 말이 들렸다. 물건을 고르던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상대를 쳐다본 장애아이의 행동이 불편했던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뭔가 할 말을 찾는 순간 손님은 자리를 떠나버렸다. 서둘러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아이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고, 이것 또한 내 부주의라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일 이후로 난 아이와 함께 다닐 때 옷이나 마스크를 바로잡아주는 척하면서 딸아이의 시선을 보는 게 일이 됐다. 

아마도 장애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공감하리라. 쳐다보는 것,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 친해지고 싶다는 것, 이 모든 호감이 비장애인에게는 부담이고 예의 없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매년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바라는 것이 있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살 수 있기를. 그 하루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장애를 더 많이 이해하고 편견 없이 봐주기를 말이다. 장애 자녀 부모들은 매일같이 목청껏 외치고 있다, 응답하라 대한민국!